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붕뚫고 하이킥 (문단 편집) === 비판론 === 사실 새드 엔딩 자체는 작품을 표현하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이므로 단지 이걸 이유로 작품의 완성도나 급을 논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런 엔딩에 관해서 별다른 복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감독이 이런 충격적인 엔딩으로 던지고자 했다는 메시지 조차도 대다수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점이었기에, 결국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결말이었는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새드 엔딩 자체가 작품 전체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거나 전작처럼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했다던가 하는[* [[거침없이 하이킥]]의 경우는, 작중 민민커플이 깨지게 된 상황에 대하여, 제일 친한 친구의 남편과의 재혼이라는 막장 드라마 급 상황이 가족 시트콤에 맞지 않아 급하게 현실적인 엔딩으로 바꿨다는 명분이 존재하며 작중에서도 초반부터 가족들이 아이의 미래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신지와 민용이 재결합할 것을 권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특별한 이유나 명분 없는 상황이었기에,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엔딩에 납득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단순한 충격요법을 위한 새드 엔딩이었다는 악평까지 따라다닐 정도이며 실제로도 지뚫킥의 엔딩은 하이킥 3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완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병욱의 이런 식의 뜬금없는 ‘오직 새드 엔딩만을 위한 새드 엔딩’ 은 처음이 아니다. 8년 전인 2002년에 종영된 웬그막의 정수의 죽음에서도 아무런 복선이나 떡밥이 없이 1화만에 그냥 보내버린 전적이 있었는데, 제 버릇 개 못 주고 또 일을 치고 만 것이다.] * 사실 '새드 엔딩이기 때문에 망작이다'라고 할 순 없지만, 그 새드 엔딩이 연출된 방식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건 가능하다. 시청자들의 반발이라는 감정적인 요소를 전부 걷어내고 순수하게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만 봐도 이 엔딩은 잘 연출된 것이 아니다. 일단 반전이라는 것은 그 이전까지 복선을 충실히 깔아놓고 그렇게 될 개연성이 있어야 완성도를 더한다. 전설의 반전으로 평가받는 식스센스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보면 작품 전반부부터 결말과 연계되는 복선들이 충실히 깔려있고, 그렇게 될 개연성도 충분히 있기에 반전을 알고 보면 독자, 혹은 관객들이 감탄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지붕킥의 경우 저렇게 될만한 '''복선이나 개연성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교통사고 자체의 개연성이 아니다. 극 중 인물이나 상황으로 인해 결말이 저렇게 흘러갈 수 밖에 없는 극 전체의 개연성을 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새드 엔딩이라도 이지훈과 신세경이 사랑해 결혼 직전까지 갔다가 집안의 반대로 파혼하고, 그 과정에서 준혁이 비뚤어져 오토바이에 심취하다가 교통사고를 내 죽는 엔딩이라면, 마찬가지로 뒷맛이 더러운 엔딩이지만 최소한의 개연성 자체는 있다. 이씨 집안은 매우 보수적이고 하나밖에 없는 막둥이, 그것도 엘리트 아들에 대해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 결혼을 반대할 개연성이 있고, 정준혁은 반항아였다가 세경과 정음 등 인물들로 개심한 케이스이므로 다시 비뚤어질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둘이 교통사고로 죽는 엔딩은 '누구나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것 사실 말고는 개연성이 전무하다.][*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에 관해 김병욱 PD는 세경-지훈이 벨벳언더그라운드의 음반을 같이 듣는 에피소드에서 지훈의 깊은 고독을 세경이 이해하고, 이 음반을 지훈에게 선물하는 이어지는 에피에서 시청자들이 깊은 고독을 공유하는 두 사람이 이미 지훈-정음 커플 이상의 유대감과 깊은 감정을 공유하는 걸로 이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트콤의 특성상 완벽해 보이는 서울대 레지던트 의사인 지훈도 중간중간 웃긴 설정과 허당 설정들이 계속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이러한 진지한 서로의 감정선이 시청자들에게는 납득이 힘들었을 터..김병욱 PD본인도 자신이 만들어놓은 장치가 시청자들에게는 납득 가능한 개연성을 주는 데 실패했다고 인터뷰 했다. 물론 촬영 일정이 너무 타이트 해서 이러한 장치의 세밀함을 좀 더 만들어 내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였다.] 또한 작중 엔딩은 작품의 내러티브를 마무리 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지붕킥은 전체적으로 보면 성장 스토리에 가깝다. 사실상 가정붕괴 직전까지 왔던 이씨 집안에 신씨 자매가 와 순재-현경 부녀가 갈등을 점점 회복하고, 보석은 무능한 사위이자 부사장에서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 자리를 찾아가며, 주변에 무관심한 엘리트 지훈은 세경과 정음으로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며, 준혁은 세경을 만나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극복하고, 가족의 무관심으로 비뚤어진 해리는 신애란 존재를 통해 환골탈태하다시피 변한다. 이는 어려움을 극복하며 아프게 성장해가는 세경과 신애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저 엔딩이 작품의 내러티브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가? 엔딩에서 근황이 나온 인물은 정음과 준혁 뿐이었으며, 이들에게 이 결말이 미친 영향은 당연히 소중한 존재를 잃은 둘이 슬퍼한다는 것뿐이다. 물론 이를 통해 준혁이 정신을 차렸고, 정음이 성실하게 회사생활 중이란 건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이미 '''결말 이전에''' 완성된 둘의 캐릭터성이다.[* 준혁은 세경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면서 학업에 관심을 다시 갖게 되었고, 말도 안되는 불우한 환경에서도 꿈을 갖는 세경을 보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또한 정음은 자신을 돌봐주듯 챙겨주는 지훈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20대임에도 누군가에게 기대기만 하는 철부지)를 돌아보고, 책임감을 갖고 당당한 어른이 되기 위해 그로부터 독립을 했다. 이는 세경과 지훈의 죽음과 무관한, 결말 이전에 진행되고 마무리된 둘의 성장 스토리이다.] 이들의 죽음이 나머지 인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알려진 바 없다. 즉, '''엔딩이 스토리에 기여한 바가 사실상 없다.''' 마지막으로 그 메시지, 엔딩이 주는 톤이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나 내용과 상반된다는 것이다. "희망은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니다. 보는 사람이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쉬운 희망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대로 느끼고 살아라"란 연출의 말은 'TV에서와 달리 현실에서는 모든게 쉽게 해결되진 않는다'는 소리로 보인다. 일단 이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쳐도, 이는 엔딩의 톤과 전혀 맞지 않는다. 일단 신씨 자매에게는 작중 한번도 희망이 쉽게 온 적이 없다. 둘은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노숙생활, 거지 취급, 굶주림, 절망을 연달아 겪으며, 마지막에 기껏 얻은 희망조차 아버지와의 재회였지만,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소중한 사람들과의 이별과 동시에 찾아왔다. '쉬운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제대로 느끼고 살아라'는 이미 신씨자매를 보는 사람들이 충분히 생각하고 있을 메시지였다. 실제로 둘에게 쉬운 희망은 단 하나도 없었으며, 둘은 그 와중에도 조그만 행복이나마 최대한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저런 메시지는 신씨자매가 가족끼리 재회하긴 했지만 그 외에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의 이별이라는 '''씁쓸한 결말'''[* 원 엔딩이 워낙 막장이라 묻히는데 사실 이것도 충분히 새드 엔딩이다. 여기서만 끝났어도 마냥 행복하게 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세경과 신애는 거의 모든 인간관계와 조국까지 잃고, 해리는 베프를 잃고, 준혁은 첫사랑을 잃고, 지훈도 소중한 사람을, 그리고 지훈과 정음은 결혼까지 생각한 사람을 잃었다. 문제는 이 새드 엔딩에서 굳이 한발짝을 무리하게 더 간 것. 연출자가 본인 욕심에 객관적인 시선을 잃고 무리한 연출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스타워즈 프리퀄 시리즈를 찍을 때 조지 루카스도 좋은 설정을 짰지만 연출하는 과정에서 자기 욕심대로 마음껏 하다가 완성도를 깎아먹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이디어가 좋다고 결과가 꼭 좋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PD가 밝힌 의도는 충분히 의미가 있는 메시지였지만, 설득력 없는 연출을 통해 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했다면 연출자의 실력이 부족한 것이다.] 맞았다면 설득력이 있었던 메시지이다. 실제로 이렇게 끝냈다면 연출 말대로 '보는 사람이 아프면(세경이 끝내 행복하게 되지 못하고 신애와 해리는 친구를 잃었으니) 역설적으로 희망을 확인(아직 젊고 재능있는 세경에겐 미래가 있고, 신애는 새 나라에서 여느 때처럼 힘차게 살아갈 것이고 해리는 아픔을 겪고 더욱 성장할 것이다.)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근데 실제 엔딩은 '희망이 쉽게 오지 않는' 엔딩이 아니라, 그렇게 쉽게 오지 않는 희망을 한 조각조각 모아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그 작은 한 조각의 희망조차 모조리 앗아간''' 엔딩인 것이다. 이건 현실주의가 아니라 허무주의, 염세주의에 가깝다. 만약 저런 아픈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싶었으면 차라리 둘의 죽음을 엔딩에 배치하지 말았어야 했다. 언니의 죽음을 딛고서 살아가는 신애, 첫사랑, 그리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람을 잃은 아픔을 갖고 성장해가는 준혁과 정음의 모습이 의미있게 그려졌으면 저런 메시지가 타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작중에선 이 모습이 제대로 연출되지 않았다. 작품을 경험한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이에 대해 감독이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연출되어야지, '''연출이 일일이 설명해줘야''' 겨우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고, 그나마 그 메시지에 공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 그건 '''실패한 연출이다'''. 중요한 건 이러한 대대적인 반감이 단순히 감정적으로 '주인공들이 슬퍼지는 건 싫어요 ㅠ'하면서 생긴 반감 뿐만이 아니란 것이다. 위에 언급된대로 해당 연출의 메시지를 존중한다고 쳐도 그 메시지를 연출하는 방식이 너무나 공감이 안되게, 허접하게 연출되었다면 그건 수준 낮은 엔딩이다. 즉, 이 엔딩은 그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연출된 방식만 놓고 보더라도 완성도가 낮은 엔딩이다. 거기다 세경과 지훈, 두 사람만을 놓고 보면 마냥 새드 엔딩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세경한테 있어서는 반론 역시 존재한다. 예를 들면 신애가 장래희망이 여러 번 뒤바뀐 에피소드의 후반부에서는 언니는 꿈이 뭐냐는 신애의 질문에 아빠와 신애랑 셋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작 중 세경은 1화부터 내내 식모살이, 짝사랑 앓이 등등 고생만 하다가 이제야 시련이 끝나려는 찰나에 죽어버렸으니 마냥 해피 엔딩이라 보기에도 힘들다.] 어쨌거나 두 사람의 죽음으로 아들을 잃은 순재, 자식처럼 키우던 동생을 잃은 현경,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정음, 엄마와도 같던 언니를 잃은 신애, 딸을 잃은 신달호 등 작중 등장인물들은 불행해진 셈인데, 정작 그 나머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묘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한동안 지훈이 정음과 세경 중에 진짜 사랑했던 건 누구였는지를 두고 언쟁이 많았었다. 이지훈이라는 캐릭터는 바빠서 가족들과 있는 시간도 많지 않고 남에게 큰 관심도 없고 남의 인생에 참견할 만큼 오지랖이 넓은 캐릭터도 아니다. 정음한테는 초반부터 유치한 장난도 치고, 연애하면서는 어느 연인들처럼 행복한 연애를 했고 사소한 일로 싸우기도 하고 질투도 했다. 정음과의 이별 이후엔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였다. 세경을 향한 감정이 뭔지를 두고도 말이 많았는데 입주 가정부인 세경을 챙겨주고 바쁜 와중에도 세경의 공부를 도와주고 이상하리만큼 신경을 쓰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선을 긋는 세경에게 화를 내며 서운해하고 세경에게 관심을 보이는 동료 의사에게 책임 못 질 거면 건들지말라며 과한 반응을 보인 적도 있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게 꿈이라고 했던 세경이가 그리워하던 아빠를 만나 외국으로 떠난다고 한 뒤에도 가지말라고 검정고시 핑계를 대고 "내가 널 붙..." 라며 뒷말을 머뭇거리기도 했다. 자신이 사준 목도리를 잃어버리고 울더니 다시 찾았을 땐 왜 그렇게 덤덤했냐며 묻기도 하고 그 후로도 병원에서 호출이 200번 울려도 의식하지 못하고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모습, 세경이가 있던 부엌을 자꾸 본다던가 세경의 방문 앞에서 노크는 하지 못하고 서있는 모습 등 혼란스러운 지훈의 마음을 암시하는듯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지훈은 세경을 향한 마음이 사랑이 아닌 연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지막회에서도 전화로 세경이가 집에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정음이 있는 대전에 내려가기로 결정하는데 뒤늦게 세경이 남긴 쪽지를 보고 황급히 뛰쳐나와 공항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한다. 차안에서 세경에게 갈려는 이유와 안갈려는 이유가 뭐냐며 묻는데 아저씨 때문에 가기 싫었다며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세경의 마지막 고백을 울먹이는 눈으로 쳐다보는 지훈과 함께 끝이난다. 그때 지훈이 세경에 대한 사랑을 자각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의사와 입주 가정부라는 현실의 계급 차이 때문에 지훈 스스로 마음의 벽을 치고 그 감정을 외면하고 부정 했을 거라고 한다. 실제 PD가 지훈의 자각을 언급 하기도 했었고. 정음과 세경 둘 중 누가 진짜 사랑이었냐는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둘 다 지훈한테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떠나, 김병욱 프로듀서는 이 작품 엔딩 이후로 점점 시트콤의 대가 자리와 메이저 피디 자리에서 내려오고 있다. 김병욱 책임 프로듀서가 의도했든 안 했든, 그의 내리막길의 요인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시트콤은 웃자고 만드는 분야 중 하나인데, 오프닝과 캐스팅, 그리고 전체 진행은 참 잘해서 '''제2의 국민 시트콤'''으로 만들어 놓고, 그런 다신 없을 인기를 자랑하던 시트콤의 '''엔딩을 잘못했다'''는 점에서 그의 감은 증명되었을지 모른다. 아무튼 거침킥에서 지붕킥으로 이어지는 '''국민 시트콤 계보'''를 이은 프로듀서로서, '국민을 웃길' 책임을 져버린 결과라고 하겠다. 시트콤 내내 똥, 방귀 등 온갖 해학적 요소는 다 쓰고, 홍보할 때도 웃음을 준다고 계속 홍보했기 때문. 그리고 애초에 시트콤은 '''코미디 장르'''다. 즉, '''새드 엔딩이 아니라 작품 취지와 장르 특성을 완전히 무시한 배드 엔딩이라고 하겠다.''' 어쨌거나 이전 시트콤들에 너무나 뻔한 결말의 해피 엔딩에 식상함에서 조금 벗어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긴 했지만 그 시도는 신선함은커녕 오히려 많은 시청자들에 분노를 사게 됨으로 너무나도 끔찍했던 패착이 되어버려 이후에 그의 후속작들까지 큰 인기를 얻지는 못하게 됨과 동시에 대한민국에서의 시트콤 시대가 막을 내리게 만드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 결과적으로 크게 실패했던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